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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톱의 마음
    생각 2019. 8. 17. 01:30

     

     

     손톱을 잘라야 한다. 또 하얗게 길어 잘라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내 손톱은 동그랗고 예쁘지 않아 잘 다듬어줘야 한다. 손톱이 길면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며 손톱이 꺾여 부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웃기게도 손톱이 너무 짧으면 손가락이 불편함을 호소한다. 노트북 타자를 치면 손끝이 아리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컵을 잡거나 할 때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고작 1~2mm에 불과한데도 손톱을 자르고 나면 그만큼의 틈을 내 삶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자라도 자라도 잘려나갈 운명, 잘라도 잘라도 자라날 운명.

     엊그제부터 잘라야지, 마음먹었으나 손톱깎이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 쉽게 귀찮아져서다. 이번엔 다른 느낌도 있었다. 소소한 연민. 키가 크는 것에 있어 우리는 성장했다고 하지만 손톱에 있어 그러지 않으니까 말이다. 똑같이 자라는 건데, 그저 둘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키는 크고 손톱은 작아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럼 손톱의 마음은 누가 신경 쓴다는 말일까.

     손톱이라니, 알게 뭐야, 누군가 말했고 그 말도 맞을 것이다. 나도 작은 손톱의 성장엔 관심이 없었기에 과거의 내가 그 누군가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들이 모여 군중이 되면 손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내가 될 수도 너가 될 수도 우리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자라도 자라도 잘려나갈 운명, 잘라도 잘라도 꿈꿀 운명. 그런 건 너무 슬프다. 이미 정해진 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말 같아서 아프다. 이미 내가 꾸는 꿈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 같다. 약한 나는 절망과 고통을 피하고만 싶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말하셨다. 아니, 좋아한다면 네가 그것을 포기할 수 없을 거랬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무섭고 두려워도 그것을 놓지 못한다고 하셨다. 글을 쓰면서 좋아하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커질 때, 그럼에도 꽉 붙잡고 있는 건 선생님의 말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손톱이 자란다, 말도 없이 이유도 없이. 잘려나갈 걸 알아도 앞으로 밀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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