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낙엽의 언어

못 담 2019. 10. 7. 01:13

 코코의 머릿결을 만지며 생각했다. 코코는 어디서 왔을까. 코코의 머릿결은 거칠며 푸석푸석하다. 머리카락의 자갈색은 눈동자 색과도 같다. 코코의 눈동자는 까만 눈동자처럼 깊지 않았고 반대로 붕 떠 있어. 코코의 눈을 보면 내가 풍선처럼 공중에 몸이 뜨는 느낌이 난다. 그것은 코코의 존재감과 닮았다. 코코의 눈에는 내가 이따금 비치기도 하는데, 그건 나의 존재감일까. 코코의 눈동자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 코코의 눈에는 쉽게 빗자루에 쓸려버리는 가을이 있다. 코코는 어디서 왔을까. 코코를 처음 본 건 저번 달 초. 해마다 길어지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코코는 내가 잘 다니는 공원 벤치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사람이 드물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그곳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라서, 아니 새벽의 그곳에서 사람을 본 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는 약간 당황했었다. 아픈 사람인가 싶어 쭈뼛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속으로는 오늘 왜 왔지? 책망하면서. 저기요, 부르는데 코코는 눈을 떴다. 그때도 코코의 눈엔 이미 가을이 있었다. 날은 습했고 코코의 머리는 푸석푸석했음에도.

 코코는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눈을 가만 감고 미약하게 부는 바람과 약해진 매미 소리, 바닥에 떨어지는 햇빛을 느끼고 있었다고. 눈을 떴는데 내가 있어서, 여름이 사람이 된 걸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코코는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고 했다. 정말 여름인가 해서. 그래서 나는 불안했다. 나로 시작해서 코코가 이 관계를 끝낼까 봐. 코코는 낙엽에 가까우니까 어디든 갈 수 있다. 바람에 날리고 사람들의 구둣발에 채여 어디로든 떠날 수 있으니까. 나는 코코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고 오직 공원에서만 코코를 만날 수 있었다. 코코가 사라지면 나는 이곳에 낙엽 잃은 나무처럼 남을 텐데.

 코코는 어디에서 떠나왔을까. 코코는 잠깐 집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꺼리는 목소리로, 내가 졸라대니까 조금 입을 열겠다는 듯. 그렇지만 코코의 말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세계가 다른 말. 그러니까, 바람의 말에 가까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때론 폭력적이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세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코코가 사라지는 날을 가늠하는 일을 포기하기로 했다. 코코가 있었다는 것을 언제 망각할지 모르므로. 코코는 사람의 일부를 가져본 적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