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부활

못 담 2020. 5. 4. 02:30

 

 

 공간: 에메랄드 성*의 창고.

 시간: 현대.

 

 (도로시와 토토는 각기 청소 중이다. 물건을 옮기고 그 자리를 쓸고 다시 물건을 원래 자리에 두고. 창문이 없어 먼지는 그대로 물건 위로 앉는다. 일은 끝나지 않고 둘은 바쁘게 움직인다.)

 

 도로시: (먼지떨이를 던지고) 토토. 우리 돌아가자.

 토토: (한숨) 또? 질릴 때 됐다고 생각했는데….

 도로시: 빈말로 하는 게 아니야.

 토토: 그래, 그래. 네가 계속하는 말이잖아. 마치 숨 쉬듯이, 해가 지고 또 해가 뜨듯이. 아니야?

 도로시: 난 진지해!

 토토: 그렇겠지. 걱정하지 마, 믿어 줄게.

 도로시: 정말?

 토토: 정말! 그러니까 네 계획부터 한번 말해봐.

 도로시: 우선…이 빌어먹을 일을 그만두는 거지.

 토토: 그리고?

 도로시: 이 망할 도시를 떠나는 거야!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유유히 도로를 달리며. 가끔 담배를 피우며 낄낄거리고 말이야.

 토토: 또, 술을 마시고? 영화 속 한 장면 같네.

 도로시: 그렇지. 역시 토토야. 내 마음을 딱 알아줘.

 토토: 그리고 낡은 모텔에서 잠을 자겠지. 그렇지만 술은 비싼 걸 마셔줘야 해. 가진 돈이 떨어진다고 해도.

 도로시: 유리잔에 담긴 칵테일들을 꼭 마실 거야.

 토토: 달다고 한 번에 들이키면 안 되는 거 알지?

 도로시: 물론이지. 나도 다 알아. 토토,

 토토: 왜?

 도로시: 데낄라 썬라이즈는 무슨 맛이야?

 토토: (상상하며) 상큼한 맛이지. 달고 예쁜, 빨간 시럽이 가라앉아 있고…그게 마치 석양 같아. 이상하지…. 석양은 그날의 해가 죽는 것…. 어떻게 그런 맛이 날까.

 도로시: 토토가 마셔본 유일한 칵테일이지?

 토토: 맞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도로시, (침묵하다가) 그래서 집에 돌아가려는 이유가 뭔데? 내 생각에 넌 그 이유를 몰라. 그냥 가고 싶은 거지?

 도로시: 집에 가는 건데 ‘왜?’라니….

 토토: 너 기억 못 하는구나?

 도로시: (먼지떨이를 주우며) 아니야.

 토토: 왜 떠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 잘 교육된 사자 같아. 어떤 겁쟁이도 채찍을 들고 가르치면 불붙인 링에 뛰어들 수 있을 거야. 안 뜨거워?

 도로시: 나 기억하고 있어….

 토토: 왜 가고 싶은지 말해.

 도로시: 나도 알고 있어.

 토토: 넌 몰라.

 도로시: 알아, 안다고! 네가 모르는 거야! 네가!

 토토: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진정해.

 도로시: 거지 같은 인간들.

 토토: 맞아.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도로시: 배신자들….

 토토: (침묵)

 도로시: …너도 나 때문에 갇혔잖아. 이 아름다운 성에. 높은 담장을 가진 성에.

 토토: 그건…후회하지 않아.

 도로시: 원망할 뿐?

 토토: 도로시, 날 시험하지 마.

 도로시: 그렇지만….

 토토: 허수아비도, 사자도, 나무꾼도 다 떠났지만 난 아니야.

 도로시: 왜? 어째서?

 토토: 걔들은 널 오래 보지 않았지만. 나는 널 계속 봤는걸. 나도, 너도, 옳지 못한 걸 옳다고 할 수 없어. 오즈의 말일지라도.

 도로시: 오즈.

 토토: 여기 급료로는 차 한 대는 무슨, 술 한잔 못 사 먹겠지. 불공정 계약이야. 이곳 사람들은 꿈에 취해 자신이 뭘 이용당하는지 모르겠지. 그들 아이도 고스란히 클 테고.

 도로시: 다들 하하호호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있을까?

 토토: 그게 편하니까. 종교를 믿는 것도 평온하기 위해서, 오즈를 믿는 것 역시 그렇겠지.

 도로시: 토토. 정말 돌아갈 방법이 없을까?

 토토: 캔자스에 가고 싶어?

 도로시: 아니.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어. 은빛 구두를 신었던 때처럼.

 토토: 뒤꿈치를 세 번 부딪히고….

 도로시: 더는 회오리 폭풍을 기다리지 않을래.

 토토: 그럼?

 도로시: (청소도구를 치우고) 토토, 우리 떠나자. 꿈 같은 소린 그만할래. 스포츠카라니. 난 운전도 못 하는데.

 토토: 나는 할 수 있는데?

 도로시: 차를 구해와?

 토토: 농담도 못 해. 오즈는?

 도로시: 이 도시의 꿈을 다 깨트리고 가야지.

 토토: 사실을 밝힐 거야?

 도로시: 누가 마녀를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난 영웅이 아니야. 회오리 폭풍에 휘말렸고 물걸레질을 열심히 했을 뿐인걸.

 토토: 그럼?

 도로시: 다음날 해가 살아날지 모르지만…. 오늘의 해를 죽여야지. 그리고 칵테일 한 잔을 마시자.

 토토: 아직 술도 못 마셔본 애송이면서.

 도로시: 토토!

 토토: 도로시는 아직 아이인걸.

 도로시: 하지만….

 토토: 걱정되는 게 있어?

 도로시: 네가 다시 개가 되면…. 오즈가 다시 너를 개로 만든다면,

 토토: 그런 건 무섭지 않아. 도로시, 성의 가장 높은 곳에 가자.

 도로시: 오즈가 무너질 수 있을까?

 토토: 그가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균열은 생기면 멈추지 않아.

 도로시: 우리가 떠날 수 있을까?

 토토: 무서우면 남아.

 

 (토토, 무대 밖으로 퇴장. 도로시 홀로 창고에 남는다.)

 

 도로시: (눈을 꼭 감고) 나에겐 은빛 구두가 있다…. 은빛 구두가…. 구두가 있다…. 해는 매일 죽는다…. 죽는다…. 나, 돌아오지 않는다.

 

 (도로시도 무대를 퇴장하며 창고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불을 끄지 않아 밝은 창고방. 그대로 막이 내린다.)

 

 

* 라이먼 프랭크 바움 저, "오즈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