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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2020. 2. 1. 22:55

     

     

     

     준은 결국 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왔다. 부동산에 모든 일을 맡기고 싶었지만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에 이 소소한 바람은 무산됐다. 그 은 껄끄럽다는 답변. 쯧, 하고 혀 차며 말하는 노인에 준은 언짢아 질 뻔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지에서 금방 온 사람 이외에 그 에 누가 들어올까.

     

     여기까지 오는 데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오는 길에 희가 언제 도착하냐고 자꾸 물어왔다. 서른 번 넘게 그 소리를 해댔다. 준은 대충 다 와 간다는 말을 또 해줬다. 지금 집에서 그곳까지 가본 적이 없어 준도 잘 알 수 없었으므로. 준은 명백히 질리고 있었다. 지루함, 준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희는 참을성이 없었고 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준은 희가 왜 따라온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희는 오지 않아도 됐다. 자기 취향인 일이 아니면 도망 다니기 바쁘면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진 걸까. 

     

     그때, 준은 전화를 끊고 노인이 한 것처럼 혀를 차고 있었다. 여러 번 따라 하다 혀를 깨물고 말았고 입안에 슬며시 피 맛이 번졌다.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야. 중얼거리던 준을 코코아 마시러 안방에서 나왔던 희가 발견했다. 희는 깔깔거리며 놀렸다.

     혀를 왜 그렇게 차? 근데 이상하게 새 소리 같아. 켁켁 거리는, 사레들린 펭귄처럼.

     평소라면 희를 귀여워하며 장난을 웃어넘겼을 준이 버럭 소리를 지른 건 둘 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준은 당황해 희를 쳐다보지 못했고 희는 말없이 코코아를 탄 머그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희는 준을 흔들어 깨웠다.

     잠깐 일어나봐. 그냥 갔다 오자. 거기에 말이야.

     준은 수마에 잠겨 희가 말하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 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잠들었다. 날이 밝자 부산스럽게 준비하는 희로 인해 ‘거기’가 어딘지 금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준은 희와 함께 에 돌아왔다. 철제로 된 초록 대문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녹이 슬어있었고 끼익- 비명을 냈다. 마당은 휑했다. 준보다 컸던 해바라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전엔 없었던 이끼들이 가득했다. 이끼들의 군락지처럼 구석구석 이끼들이 을 점령하고 있었다. 짙은 색의 우산이끼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해가 들던 곳에 키가 큰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마당의 생태가 바뀐 듯 했다. 희는 버스에 수다스러움을 두고 내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은 숨 쉬는 것조차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려 하니 마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준은 학교 다녀왔습니다, 라 말하고 싶었다. 중문을 열고 발을 거실에 발을 내디디면 은 늘 일정 온도에 머물고 있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 안방 문은 준의 방문보다 더 두꺼워 보였으니까. 안방에 있는 엄마는 매번 준의 인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여기, 거실에 준이 있었다. 젊었던 준의 엄마도. 그림자 하나 가리지 않는 낮에, 미스트처럼 흩뿌려지는 햇빛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왔다.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준은 오랜만에 듣는 엄마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손가락으로 푹 찌른듯한 엄마의 보조개가 신기했다. 그래서 그때 엄마 발 언저리에 쓰러진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희가 감탄사처럼 말했다.

     이 깨끗하네.

     준은 저도 모르게 움찔 손을 떨었다. 그래, 시간은 과거의 흔적을 지워낸다. 그러니 그날에 머물러선 안 됐다. 엄마처럼 지워져 버릴지 몰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돼. 심호흡. 숨을 가다듬은 준이 희에게 그렇네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바닥은 깨끗하고 어디서도 핏자국 비슷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벽지부터 가구 배치까지, 뭐 하나 바꾸지 않아 집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준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준이 어물쩍 서 있자 희는 말했다.

     벽지는 그대로 둬도 되겠는데, 한 번 바꿀 거야? 바꿀 거면 셀프? 업체는 또 얼마쯤 들려나. 가구는 버려야 하는 건 버리자. 아니면 옵션으로 둘 거야? 주택이라 다 빼는 게 낫긴 할 거야.

     준은 에 대해 한 번도 현실적인 대처를 생각해본 적 없단 걸 깨달았다. 희의 질문은 준의 뒷통수에 날아든 돌멩이 같았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펭귄 인형은 등 뒤에 달린 태엽을 감아주면 걸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준에게 사다 준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다. 두텁고 큰 손이 따뜻했던가. 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적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 그랬다고 들었다.

     의처증에 걸린 엄마는 준을 사랑해서 낳은 게 맞나?

     은 준의 것이 맞나?

     그 사건은 준이 막을 수 없었나?

     무엇이 문제의 시작이었을까. 준은 눈을 질끈 감고 현실로 돌아가려 했다. 자꾸 어려지려 하고 있었다.

     

     이 문제야.

     우리 은?

     잘 모르겠어. 도 다 똑같은 일 텐데.

     그럼 나도?

     

     희와 돌아가는 길에서 준은 희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버렸다. 버스는 덜컹거렸고 희의 오른쪽 어깨는 따뜻했다. 잠결에 희가 뭐라 말을 거는 듯 했지만 준은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그곳에 가면 늘 그랬다. 제일 마지막에 다녀왔을 때도 준은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 종점에 다다라 내렸으니까. 해가 진지 오래였는데 이모는 준이 어딜 다녀온 지 몰랐다.

     꿈에서, 준은 홀로그램 같다고 생각했다. 에는 준과 희가 있었다. 그들의 은 없었고. 에서 펭귄을 낳아 키우고 있었다. 준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얼마나 겪은 지 몰랐다. 꿈인지 아는데 꿈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지난 느낌. 꿈은 노이즈가 잔뜩 껴 있어서 고장 난 캠코더 같았다. 그래서 희가 물을 한 잔 뿌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었다. 여기서 자란 자신도 같이 사라지기를. 그렇지만 꿈에서도 희는 따뜻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고 장난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펭귄 걸음처럼 시간이 변함없는 속도로 계속 지나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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